성철 스님 사리탑

2023. 6. 4. 16:23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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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또래들과 뛰어놀다가 다툼이 생기면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다"라면서 서로 우기는 논란이 잦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비슷하겠다. 코흘리개 아이들에게는 이것이고 저것이고, 선승 수준에 이르면 산이고 물이 되는 도(道)가 아닐까 싶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해인사 백련암으로 2박 3일 어린이 캠프를 갔다. 삼천 배를 하고 성철 스님*을 만나 법명을 받고, B5 화선지에 직접 그려주는 동그라미 원(○)을 받았다. 삼천 배를 마치고 스님을 뵌 아이들이 몇 안 되었기에 아들이 뿌듯해했다.

불교에서 원은 '일원상(○)' 또는 '원상'이라고 한다. 삶의 굴레를 되풀이하는 윤회와 중생의 마음속 불성이 누구나 같다는 평등의 상징이다. 원의 속이 비었다고 해서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공(空)'을 상징하기도 한다.
부모님 영가를 모신 해인사 원당암을 다녀오며 성철스님 사리탑에 들렀다. 주변의 여느 부도와 모양과 규모가  확연히 달랐다. 터가 넓었지만, 사리탑은 작고 동그랬다. 공처럼 둥근 형태의 탑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에게까지 일원상을 그려주신 각별한 수행 정신이 새삼 떠올랐다.

안내판에 사리탑의 구(球)는 깨달음과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는 연꽃을 표현, 정사각형 3단 기단은 계‧정‧혜 삼학*과 수행 과정을 의미한다고 적혔다. 그리고 사리탑을 둘러싸고 있는 참배대는 앞쪽에서 뒤쪽으로 가면서 높아졌다 낮아지는데 시간의 무한성을 상징한다면서 스님은 늘 ‘자기를 바로 보라’고 말씀하셨다고 덧붙여 있었다.
아침 산은 시나브로 안개가 걷히는데…. 범부는 세파에 시달려 자기를 못 보고 한숨만 짓는다. 언제 내게도 안개가 걷히려나. (2023.5.30.)
 
* 성철 스님(性澈, 1912~1993) : 해인총림의 방장(4번)과 대한불교조계종의 6~7대 종정을 역임하며 올곧은 수행 정진과 중생을 향한 자비의 실현, 서릿발 같은 사자후로 근현대 한국 불교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 : 계율(戒律),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약칭으로 이를 삼학(三學)이라 이름. 계(戒)는 몸, 입, 뜻으로 범하는 나쁜 짓을 방지하는 것. 정(定)은 마음이 산란한 것을 일경(一境)에 머물게 하는 것. 혜(慧)는 미혹을 제거하고 진리를 증득하는 것.

사리탑 왼쪽 뒷부분 사각 비는 1996년 일타 스님이 성철 스님의 행적을 새긴 글 '퇴옹당 성철대종사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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