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금호강까지 가다

2023. 5. 9. 08:01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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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딱히 할 일이 없어 남천을 보려고 영대교로 갔다. 다리 한가운데 섰다. 사흘 동안 비가 내려 하상(河床)이 보일 만큼 물이 깨끗하다. 하천 폭을 가득 채워 흘러오는 물이 마음을 풍성하게 하고, 둔치의 초록 잔디와 파란 하늘, 흰구름이 평화롭다. 눈이 부시다. 갑자기 걷고 싶다.
 
다리 밑에서 상류로 갈까, 하류를 걸을까 머뭇거리다 물을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물만 그득해도 하천은 미인이다. 물이 징검다리를 만나니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쏼쏼 인사를 한다. 욱수천과 남천이 합수하는 곳까지 왔다. 내친김에 무작정 걸어보기로 한다. 물 구경하려고 물가에 붙는다.
걷는 사정이 모두 다르다. 건강, 운동, 산책, 명상이 있고, 장거리를 걸으면서 자아를 찾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삿갓처럼 정처 없이 걷기도 한다. 나는 우연히 단발성으로 무작정 걷는 것이니 어디에 속하는 걸까. 현역 때에는 걸으면서 내일 일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지난 일을 떠올린다. 나이 듦이 과거로의 회귀일까, 비전없는 신세일까.

어버이날이라 딸, 아들, 며느리, 사위 순으로 전화가 온다. 다들 바빠 오늘은 만나지 못한다. 전화만으로도 사랑이 넘친다. 통화를 해서인가 물가를 따라 금계국, 씀바귀, 갈퀴나물, 붉은토끼풀, 애기똥풀이 연이어 나타나 풍요를 더한다. 느릿느릿 걷는 즐거움이다. 
 
어느덧 매호천 합류 지점에 닿았다. 곧 금호강이다. 쏼쏼 물소리가 거침없이 번진다. 유속도 빨라졌다. 하천이 강을 만나러 가니 기쁜 모양이다. 조금 걸으니, 남천이 금호강에 스며든다. 강폭이 확연히 넓고 삼각주에 나무가 무성하다. 분위기가 위엄있다. 실개천이 하천을 이루고 하천은 강을 만들어 이윽고 바다에 이른다. 조금씩 위상이 달라지는 거다. 사람살이도 그래야 하건만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자책한다. 파처럼 속이 텅 빈다.


금호강교를 지나 범안대교부터 휴대폰 밧데리가 거의 소진됐다. 충전할 곳을 찾아 팔현 강둑에서 고모역으로 방향을 튼다. 고모역 앞 중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휴대폰을 충전한다. 밧데리의 수치가 올라가니 덩달아 나도 배가 부르다. 램블러를 보니 집에서부터 14km를 쉼 없이 걸었다. (2023.5.8.)
 

영대교에서 바라본 파란 하늘, 푸른 잔디의 남천.
물이 가득히 흘러내리는 남천과 영대교
징금다리를 통과하는 물살.
하천을 가로지르는 인도교
남천과 욱수천 합수 지점. 욱수천 공사가 있는지 황토물이다.
금계국
독일아이리스
씀바귀
붉은 토끼풀
애기똥풀
갈퀴나물
그윽한 하천 전경
강태공이 남천에서 잉어 두 마리를 낚았다.
경부선 철도와 성동1교
휠체어 산책. 어버이날의 아름다운 풍경.
남천과 매호천 합수 지점.
걷기 좋도록 짚이 깔렸다. 맨발 걷는 사람도 보였다.
남천과 금호강 합수 지점.
금호강은 작은 하천과 달리 위엄있다.
금호강교~범안대교 아래에는 강태공이 많았다. 범안대교~공항교까지 7.5km 낚시금지지역.
금호강 삼각주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범안대교를 지나고 자전거길은 아카시아가 우거졌다. 자동차도 간혹 다녔다.
탐조대가 6곳 있었다. 강변 나무가 우거져 탐조구는 시야가 막혔다.
휴대폰 밧데리 소진으로 여기까지(강변에 있는 팔현 파크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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