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2. 16:41ㆍ일상다반사
어두컴컴하고 황량한 거리는 마치 서부극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였다. 길가 상점에 불이 꺼졌고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리 끝에서 곧 결투를 시작하는 리 밴클리프*가 총을 뽑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저녁 일곱 시, 내가 본 교동시장 앞 동성로 거리 풍경이었다.
평소 존경하는 **형과 시내 친구 가게에서 만났다. 가게 문을 닫은 후 인근 식당애 가려고 동성로 거리를 걸었다. 빈 점포가 많아 보였다. 번성했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저녁 어스름만 깔리고 있었다. 거리는 패션주얼리가(街)로 변모했으나, 불경기 탓인지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시내에서 장사하는 친구는 번창했던 상점이 쇠퇴한 원인이 ‘대중교통 전용지구’ 탓이라고 했다. 2010년 대구시에서 죽어가는 도심을 살리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려고 도심 1.05km 구간(반월당~대구역)을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지정해 낮에는 승용차 운행을 금지했다. 쇼핑 고객은 버스를 타고 와 쇼핑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가용 통행 제한이 계속되니 당연히 고객이 줄어들었다. 동성로 상권이 다시 살아나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대부분 정책은 손바닥 뒤집는 모양새다. 한쪽이 좋으면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책이 나와서 친구 하는 장사가 잘되면 정말 좋겠다.
식당에는 거리의 사람들이 다 모였는지 시끌벅적거렸다. 거리에는 통행인이 없고 식당에만 소복하니 묘하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우리는 조용히 마시며 담화했다. 이모님이 들락거리며 모자란 것 없느냐고 정(情)을 냈다. 형님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with: 송원, 황제)
* 리 밴클리프(Clarence LeRoy Lee Van Cleef Jr, 1925~1989): 미국 영화배우. 《하이 눈》, 《OK 목장의 결투》,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와 같은 서부극에 주로 나왔다. 살기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 1950년대 및 60년대 세대는 '리반클립'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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