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0. 10:26ㆍ일상다반사
시산제를 모신 후 단체로 인근의 용연사에 갔다. 이 절은 912년(신라 신덕왕 1년) 보양 국사가 창건했다. 절터에 용이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용연사라고 불린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는 극락전, 영산전, 삼성각, 명부전, 만월루, 선열당, 인악당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석조 계단*을 비롯해 보물 5점과 대구시 유형문화재 1점(극락전), 문화재자료* 1점(삼 층 석탑)이 있다. 그리고 고승의 고색창연한 부도 14기가 고찰임을 증명하듯 말없이 서 있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황금용 장식물이 보였다. 새로 조성한 것인지, 본래 있던 우물에 용머리 형상을 덮어씌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절 이름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자칫하다가는 용연사(龍淵寺)가 용정사(龍井寺)로 되겠다는 우매한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극락전 계단과 삼 층 석탑 앞에 황금두꺼비 조형물까지 만들어 놓았다. 경건한 사찰 분위기에 배치하는 느낌을 받았다.
안양루도 만월루로 현판을 바꿔 달았다. 원래 보광루였던 것인데 안양루에서 또 바뀐 것이었다. 속세에서는 기관장이 바뀌면 의욕적인 일 추진으로 멀쩡한 부서 이름을 샤프하게 뜯어고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용연사는 내게 특별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적확히 표현하자면 용연사 약수터라고 해야겠다. 1972년 봄 용연사에 갔다가 능선 가까이 있는 약수터에 들렀다. 관리인으로부터 약수 효과에 관해 듣고 부모님 드리려고 약수를 10 리터 담았다. 그때는 거기서 플라스틱 물통을 팔았다.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관리인이 약수를 담은 후 "땅에 놓으면 약효가 떨어지니 조심해 들고 가라"면서 내게 건넸다. 가뿐한 물통이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그것을 들고 산길을 오르내리며 정대리를 거쳐 버스 종점이었던 수성못까지 걸었다. 어림잡아 18km는 될 것 같다. 5번 버스를 타서는 무릎 위에 고이 얹어왔다.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크게 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어리석고 사리에 어둡다. 그럴 때면 스스로 한심스러워 실망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 그러니 중생이 아닐까. 약수는 아직도 효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 용연사 석조 계단(龍淵寺石造戒壇): 용연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조 계단.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던 곳으로, 통도사의 부처 사리 일부를 가져와 이곳에 봉안했다. 사각형의 이중 기단 위에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리고, 꼭대기에 보주를 조각했다. 광해군 5년(1613)에 만든 것으로 추정. 보물 정식 명칭은 ‘달성 용연사 금강 계단’이다.
* 문화재자료: 시·도지사가 시,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 문화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시·도 조례로 지정한 문화재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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