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갑오징어 낚시

2022. 11. 11. 06:03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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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시절 체험한 '갑오징어 낚시'는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오징어 낚시' 하면 밤바다에서 대낮 같은 불을 밝힌 어선이 잡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때라, 갯바위에 앉아 잡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이렇게 신나는 경험은 흔치 않을 것만 같다.

오징어는 연체동물로 머리, 몸통, 다리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머리는 다리와 몸통 사이에 있고 양쪽에 큰 눈과 입이 있다. 색깔은 환경에 따라 바꿀 수 있으나 대체로 짙은 갈색이고 죽으면 흰색이 된다. 까마귀를 잡아먹기 좋아해 수면 위에 죽은 체 떠 있다가 까마귀가 채가기 위해 달려들면 긴 다리를 휘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고 하여 오적어(烏賊魚)라 불렀고 발이 열 개라 십초어(十稍魚)라고도 한다. 갑오징어는 일반 오징어와 달리 몸통 안에 석회질의 길고 납작한 뼈가 있어 갑옷 갑(甲)자를 따 갑오징어라 한다.

믿지 못하거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오징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 하는데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얼마 지나 글씨가 증발하여 사라진다. '오징어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경계한 옛말도 친구를 사지(死地)에 몰고 가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바닷가에서 해안 초소 근무할 때였다. 초여름, 초소 아래 바위에 앉아 전우와 함께 갑오징어를 잡았다. 낚시 장비와 채비는 그야말로 간단했다. 잠자리채 같은 입이 큰 뜰채 1개와 50여m 정도 되는 낚싯줄 몇 가닥, 미끼로 사용할 손가락 크기의 생선 한두 마리가 필수였다. 생선은 어촌 지역이라 바닷가에 버려진 것을 주워 사용했다. 갑오징어를 담을 박스, 송곳이나 못, 칼도 있어야 한다.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커 만조 때 해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갑오징어는 수심이 깊으면 뭍 가까이 나오지 않으므로 수심 10여m 되는 곳이 낚시터로 제격이라 한다. 수심이 그 정도 되지는 않았지만 잘 잡혔다. 잡는 방법이 매우 쉽고 재미있었다. 소개하자면,

①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안전한 넓은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② 낚싯줄 한 개에 미끼 생선을 빠지지 않게 묶어 돌팔매질하듯 힘껏 바다에 던진다.
③ 5분 정도 기다리다 낚싯줄을 살살 당겨 입질이 느껴지면 한낮의 고양이가 대청마루 지나가듯 두 손으로 살금살금 당긴다. 갑오징어는 미끼를 한번 물면 거의 놓지 않는다.
④ 낚싯줄이 당겨지면 10개 발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다가오는 갑오징어가 보인다. 미끼를 문 갑오징어 외에도 몇 마리가 동행하듯 가까이 따라온다. 발치까지 접근하면 뜰채로 한꺼번에 건져낸다. 뜰채에서 끄집어낼 때 먹물 세례를 당하지 않으려면 다리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잡아야 한다.
⑤ 갑오징어를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미끼는 필요 없다. 갑오징어가 대신한다. 몸통 가장자리의 한 곳을 송곳(못)으로 뚫는다. 살가죽이어서 피[血] 나지 않는다. 뚫은 곳을 낚싯줄로 묶은 다음 바닷물에 살짝 놓아준다. 춤추듯 어디론가 돌아다닌다.
⑥ 5분 정도 지나 낚싯줄을 당기면 미끼 갑오징어가 제 친구를 최소 한 마리부터 보통 서너 마리까지 몰고 온다. ‘오징어 친구는 사귀지 말라.’는 옛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붉은색, 보라색으로 현란하게 색깔을 바꿔가며 까불거리는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터진다. 10개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며 춤추는 데 정신 팔려 멍만 때릴 것이 아니다. 뜰채로 건져내야 한다.
⑦ 새로 잡은 갑오징어의 몸통을 ⑤의 요령대로 하여 놓아준다. 몇 차례 반복하면 마치 낚싯대를 여러 대 펼쳐 놓은 것과 같이 주욱 널려진다. 낚싯줄은 돌이나 적당한 곳에 고정하면 된다.
⑧ 잠시 후 낚싯줄을 순서대로 잡아당겨 들인다. 미끼 갑오징어가 데리고 오는 친구를 뜰채로 떠낸 후 다시 바다에 넣어준다. 같은 동작을 반복 또 반복하면 된다. 별다른 테크닉이 필요없다.

잡는 재미가 환상적이었기에 눈앞에 삼삼하다. 간조가 시작되면 낚시를 할 수 없다. 갑오징어는 잡아내는 즉시 배를 갈라 갑(하얀 뼈)을 빼내고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돌아올 때 뒷손질이 필요 없다. 이때 칼이 필요하다. 잡으면 손질할 사람도 필요하다. 잘 되는 날은 마릿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2인 1조가 좋다. 생각만 해도 입이 벌어진다. 추억은 꺼내는 것이다. 군 복무 하던 지난날들이 갑오징어처럼 줄줄이 올라온다.

아직도 그곳에[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앞 바닷가] 갑오징어 낚시가 되는지 궁금하다. 지난 5월, 반백 년 전 마지막 근무했던 초소를[영광군 염산면 옥실리 해안] 찾아갔는데, 자취도 없었다. 일 하러 나온 중년에게 문의했더니 "동네 어른 말씀이 예전에 초소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초소가 사라진 지 꽤 오래된 듯했다. 낚시 했던 곳도 아마 초소가 철거 되었겠으니 갑오징어 낚시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블랙박스(edmblackbox.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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