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4. 10:13ㆍ여행의 추억


국철 고모역은 1925년 경부선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1931년 보통역으로 승격해 80여 년을 대구 시민의 삶과 애환을 함께해 왔다. 작은 역이지만 통근열차와 완행열차가 오가면서 시민의 발이 됐다. 승객 수요의 격감으로 2004년 여객 업무 중단에 이어 화물 업무도 경산역으로 이전하고 은퇴를 준비하다가 2019년 역사를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우연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기 휴관일인 월요일이었다. 손갓을 해 이맛전을 유리 창문에 붙여 실내를 살펴보니, 고모역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인적이 없어 조용한 주변을 외관만 둘러보고 왔다. 깔끔했다.
역사 입구에 '고모역 시인'으로 통하는 박해수 시인(문학박사)의 詩 <고모역>이 작은 오석에 새겨져 있었다.

고모역 / 박해수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역은 스러지고
시레기 줄에 얽혀 살던
허기진 시절의 허기진 가족들
아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기억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화물열차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 가던 역이다
고모역에 가면
어머니의 손재봉틀처럼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화물열차만
꽁지 빠진 새처럼
검은 물새떼처럼
허기지게 날아가는
그 옛날 고모역 선로 위에서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어머니의 눈물처럼 그렁그렁
옛 달처럼 덩그라니 걸려 있구나
옛 달처럼 덩그라니 걸려 있는
슬픔처럼 비껴 서 있는
그 옛날 고모역에서
역사 외부에 구상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세운 화강암 시비(詩碑)도 있었다. 시비가 삐딱해 보여 오른쪽을 살짝 올려 바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비는 구상 詩 <고모역>을, 서예가 혜정 류영희 선생의 아름다운 글씨로 새겼다.

고모역 / 구상
고모역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서 기다리신다.
이제는 아내보다도 별로 안 늙으신
그제 그 모습으로
38선 넘던 그 날 바래 주시듯
행길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천방지축 하루 해를 보내고
책가방엔 빈 도시락을 쩔렁대며
통학차로 돌아오던 어릴 때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채
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이천십구년 봄에 구상 시를 적다
혜정 류영희)

1925년 시작한 고모역은 1949.11.12. 화재로 전소했다. 임시 역사로 작은 화물차를 사용하다가 현재 역사를 1957.9.29. 준공했다. 1970년대에는 하루 이용객이 5만여 명까지 달했으나 1990년대 후반 승객 수요가 점자 줄어들어 마침내 폐역되고 말았다.



고모(顧母) 한자 역명을 풀어 쓰면 '어머니가 돌아본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아득한 옛날 근처에 홀어머니와 살던 남매가 산을 쌓으면서 서로 더 높이 쌓겠다고 다투고 시샘하자 이를 본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마음과 실망감에 집을 나왔다. 그렇게 걷던 어머니가 언덕 위에 올라서서 집을 향해 뒤돌아본 곳이 바로 고모령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던 아들을 어머니가 고모역에서 배웅하며 다시 돌아보았다는 데서 기원한다. 이에 관해 현인 가수가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이라는 유명한 옛 노래가 있다. (20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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