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 11:08ㆍ여행의 추억
울주의 암각화(국보 2점)를 보러 갔다가, 문화해설사에게 "통도사 서운암에 암각화 예술 작품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 날(2.18.) 서운암에 갔다. 암각화 외에도 놀라운 작품들이 있었다.

서운암(瑞雲庵)은 산문 매표소에서 3km 정도 되는 거리. 17개 산내 암자 중 비교적 통도사와 가까운 곳이었다. 고려 충목왕 2년(1346) 창건한 유서 깊은 암자로, 기존의 전각 외에도 비탈 언덕 위에 2012년 장경각을 중건했다. 현재 조계종 제15대 종정이신 성파 스님*이 머무신다.

서운암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장독대였다. 엄청난 개수의 장독에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담가 판매하고 있었다. 경내에는 성파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제작한 도자 삼천 불과 십육만 도자 대장경이 봉안돼 있고, 장경각 마당에 국보인 울주의 암각화 2점을 원형 크기로 작품화해 수조에 전시해 놓았다.

<도자 대장경>은 '팔만대장경'을 도자 판에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초벌구이한 도판에 팔만대장경 영인본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인쇄해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방식으로 10년 넘게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가 좌우 반전돼 있고, 앞뒤로 새긴 목판이지만, 서운암 도자 대장경은 불경의 내용을 보려고 제작해 글자가 반전되지 않고, 한쪽 면만 새겨진 도자 판이다. 따라서 도자 판(16만여 장)은 목판(8만여 장)의 두 배이고 내용은 같다. 습기에 강하고 불에 탈 염려가 없는 이점이 있다. 도자 경판의 크기는 가로 52cm 내외, 세로 26cm 내외이고, 두께 1.5cm, 무게 4kg이다.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각>은 법당을 포함 'ㅁ' 자형 건물로 외형은 해인사 장경판전을 닮았다. 서고는 대리석 받침에 경판을 눕혀서 포개 놓고 일부분 유리벽을 했다. 통로는 입구와 출구가 넓지만, 한 사람이 지날 만큼 좁았다. 팔만대장경의 정수인 화엄경 가르침을 형상화한 해인도(卍)식 통로가 아닐까 싶었다. 돌아 나오면 16만 장의 대장경을 모두 거치게 된다. 천장 등 내부가 시커멨다. 방수, 방충, 부식을 막으려고 옻칠하는 데 십여 년이 걸렸다니, 도자 대장경을 봉안하기까지 걸린 세월이 이십여 년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간의 성파 스님의 지치지 않은 공덕이 경이롭기만 했다. '도자대장경은 미래 문화유산입니다'라는 배너의 글귀가 크게 다가왔다.

법당 앞마당에 직사각형 <수조 두 개>가 'ㄱ' 자로 납작 엎드려 있다. 그 위로 공활한 하늘이 허허롭게 펼쳐졌다. 瑞雲庵 이름처럼 여러 빛깔로 아롱진 구름을 품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반점의 구름도 없는 쾌청한 날씨다. 이런 순간에는 서운암에 서운하다고 말하면 서운해하겠지. 수조 두 개 중 하나는 '울주 대곡리 암각화', 또 하나는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현대 미술로 작품화했다. 나전공예 장식 기법으로 자개 조각을 얇게 다듬어 옻칠한 기물 표면에 붙여 원형 크기로 만들어 물속에 전시해 놓았다. 실제 현장에서 자세히 보지 못한 흐릿한 무늬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고대인의 그림을 현대적 시각으로 아름답게 부활시켰다. 이 작품도 성파 스님이 삼 년을 공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수조의 암각화가 도자 대장경의 영원성을 상징해 주는 것 같았다. (2025.2.18.)
* 성파(性坡) 스님(1939~): 1960년 통도사 월하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0년 구족계를 받았다. 1981~1985년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고 거처를 서운암으로 옮겼다. 2018년 통도사 방장, 2012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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