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인보다 소주
며칠 전 친구들과 점심 먹으며 와인을 한 병 마셨다. 와인잔이 멋스럽고 잔 부딪치는 소리도 맑았다. 빛깔도 화려해 마시는 기분마저 으쓱했다. 평소 소주에 익숙해 있다 보니 세 손가락으로 잔을 들고 마시는 와인이 나 자신까지 고아하게 했다. 와인의 이미지에 덤으로 내가 얹힌 셈이었다. 덕분에 폼을 잡았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와인 한 병이 소주 10병 값이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포도주를 담갔다. 여름이면 한 말 정도 담가 마루 그늘 밑에 넣어두고 아버지가 한두 잔씩 떠 잡수시곤 했다. 포도를 씻고 말려서 껍질을 까놓을 때 알 먹는 재미로 일손을 보탰다. 포도주 색깔이 궁금해 자주 확인하면서 검붉게 변하는 술 색의 신비에 감탄하곤 했다. 그때는 우리 집뿐만 아니라 집마다 포도주를 많이 담갔다. 포..
202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