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하는 일이 없으니 김빠진 맥주 신세와 다름없다. 밥벌이할 때는 바쁜 와중에 독서도 일이었다. 이제 시간 부자가 되어 널널한 여유 속에서도 책 읽는 게 오히려 따분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미술이나 악기, 외국어라도 배운다는데 나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 시작도 하기 싫다. 끊었던 담배를 피운 지 두 달 됐다. 하루가 지루하고 게으름이 늘다 보니 심심초로 입에 댔다. 반 갑이 한 갑이 되고 점점 늘어간다. 집에서 필 수 없어 아파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간다. 한 대 피우고 들어가면 곧 다시 나와야 하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번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눈총받을까 봐 30분쯤 지나면 자리를 옮긴다. 흡연도 눈치껏 해야 한다. 꽁초는 종이컵에 담고 딴은 주변의 꽁초도 줍는 인심을 쓴다. 몇..
202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