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 09:29ㆍ일상다반사
일주일 전쯤 약속했다. 1978년부터 몇 년간 함께 근무한 김○○ 씨가 친했던 우리 네 명에게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OK 했는데 마침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를 '김 양'이라고 불렀다. 그 시대에는 金 양, 李 양의 호칭이 결례가 아니었다. 사회 문화가 보편적으로 그랬다. 그는 아가씨, 우리는 총각, 김 양은 우리 다섯 명 중에서 두 번째로 빨리 결혼해 곧 사표를 냈다. 사직을 안 해도 되는데, 아쉽게 헤어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동안 연락이 뜸했다.
우리는 아직도 그를 김 양이라고 불렀다. 새삼스럽게 ~씨라고 하기보다 예전처럼 호칭하는 게 편했다. 할머니에게 김 양이라고 부르니 옆 사람들이 슬쩍 쳐다본다. 김 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하다. 그는 오래전부터 귀에 익었거나 듣고 싶었던 그리운 소리였을 수도 있다. 여하튼, 너무 오래만의 만남이다.
H의 나와바리 <우봉가>에서 모였다. 이야기꽃을 피우니 향기에 잔뜩 취한다. 고깃집 사장님도 눈치챘는지 서비스를 베푼다. 김 양과 네 남자 누구랄 것도 없이 그 시절 그 시간을 두서없이 잡아들였다. 옛 시간이 추궁당한 범인처럼 생생하게 진술했다. 사무실 에피소드와 공주 식당의 정다운 시간이 재생되었고, 복날 무거운 수박을 사 들고 앞산에 올랐던 일도 기억났고, 설악산의 여름 추억, 마른오징어 한 축을 조스처럼 먹어 치웠던 일, 보경사 계곡에서 폭우를 만나 강시 되었던 그날 등 그 시절의 일상들이 오늘날 왜 장미꽃으로 피어나는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추억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불고가사하며 달렸던 업무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2024.10.31.)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관성을 지켜야겠다 (0) | 2024.11.08 |
---|---|
미리 크리스마스 (0) | 2024.11.07 |
텃밭 먹거리 (0) | 2024.10.28 |
계산 성당 종소리 (0) | 2024.10.24 |
하루 종일 다 함께 (0) | 202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