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6. 09:26ㆍ여행의 추억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시골에 가면서 장롱문을 잠그고 가셨다. 중학생 동생의 교복이 들어 있는 것을 깜박했다. 열쇠를 받아오려고 오후 늦게 시골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 나룻배로 낙동강을 건너니 날이 저물었다. 인적 없는 캄캄한 벌판을 8km 걸었다. 마을을 500여m 앞두고 삼거리 길이 나왔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 키가 장대같이 큰 괴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른 길로 피하면 낭패를 겪을 수 있어 정신을 차리려고 혀를 깨물었다. 통증 때문에 눈앞의 괴인이 사라졌다. 내가 허깨비를 본 것이었다.
2019년 봄, 두 달간 스페인 포르투갈 배낭여행 하면서 내친김에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까지 갔다. 사막 체험을 하면서 신기루* 현상을 목격했다. 신기했지만, 너무 멀고 작게 보여 그러려니 여겼다. 그러나 마라케시로 돌아오면서 와르자자트(아틀라스 스튜디오) 인근에서 거대한 발광체를 발견했다. 생전 처음 보는 눈부신 빛 덩어리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빛을 내고 있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살폈다. 사막에서 보았던 똑같은 발광체였다. 그것은 황무지에서 굴뚝 끝에 매달린 풍선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로만 듣던 신기루가 꼭 실물 같았다. 희한했다.
학창 시절 본 허깨비는 내가 기(氣)가 허해 일어난 환영이더라도 헛것이다. 신기루가 무엇인가. 자연 현상으로 나타난 헛것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둘 다 헛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동안 이루지 못한 찬란한 허황한 계획도 돌아보니 신기루와 다름없다. 헛것은 눈에 보이지만, 실체가 없다. 그런데도 삶은 다가가면 멀어지는 신기루이나마 하나쯤 움켜잡는 꿈☆은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신기루(mirage, 蜃氣樓) :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하여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아직도 정확한 실태와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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