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산 가짜 화첩

2023. 1. 10. 14:30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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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주 민속품 경매장에서 화첩 하나를 낙찰받았다. 호기심으로 손에 넣은 춘화첩(春畵帖)이다. 춘화는 사내와 여인의 성희 장면을 묘사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지만, 도색물과는 차이가 있다.

낙찰가 사만 원. A4 남짓 크기로 춘화 6매, 결문 1매를 이어 붙여 병풍처럼 펼칠 수 있다. 결문은 40자의 한자인데 뜻을 알 수 없었다. 말미의 간지와 이름을 보면 1842년 청나라 때 화가 비단욱(費丹旭)*이 그린 것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서체와 화풍이 완전히 다른 조잡한 위작이었다. 재미 삼아 응찰했기에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만든 정성(?)을 감안하면 그만한 화첩은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돌아와 생각하니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무튼, 춘화의 성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와 시대를 가리지 않았을 것 같다. 결문 내용이 궁금해 한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니 그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향분란사 香焚蘭麝 난사* 향을 피우고
금전교초 衾展鮫綃 교초* 이불을 펴네
함소해대 含笑解帶 웃음을 머금고 허리띠를 풀어
병견첩고 幷肩疊股 어깨를 맞대고 허벅지를 포개네
일점앵도욕탄 一点櫻桃欲綻 살짝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앵두
십지섬섬빈이 十指纖纖頻移 가냘프고 여린 손이 오르내리니
불각령서미미 不覺灵犀味美 신령한 무소뿔이 어느새 진미를 느끼네
임인년비단욱 壬寅年費丹旭 1842년 비단욱

* 비단욱(費丹旭): 중국 청나라 말기 화가(1821~1850). 그림에 정진하여 만년에 명성을 얻고, 죽은 후 높이 평가받았다. 초상화에 능하고, 미인화에 특출하였다. 산수화도 잘 그렸다. 회화 외에 문장·시사(詩詞)에도 능하였고 서법(書法) 또한 청담한 화풍과 상통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미인화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연스런 표현에 산뜻한 정취가 풍긴다.

* 난사(蘭麝): 난초와 사향이라는 뜻으로 향기가 좋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귀한 향료.
* 교초(鮫綃): 물에 젖지 않는 얇은 비단. 인어가 가졌다는 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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