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7. 01:49ㆍ입맛
처음으로 새벽 술을 마셨다. 자시(子時)가 넘었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평소에 축시(丑時)쯤 잠들 때가 많았지만, 지금처럼 속이 출출할 때는 드물었다.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인근 상가를 한 바퀴 도니 모두 문을 닫았다. 심야업소가 있는 곳까지 1.5km를 걸어갔다. 밤거리는 적막강산이다. 아무도 없는데 건너지 말라고 붙잡는 적색 신호등이 고장 난 듯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모텔촌 입구에 빈 택시가 줄지어 섰다. 그제야 거리에서 간간이 소음이 들렸다. 불빛을 보고 주점 몇 곳에 들어가니 곧 문을 닫는다고 말한다. 한 집은 혼자라서 안 된다고 한다. 얼마 전 사고가 있었다며 이유를 친절히 덧붙였다. 하는 수 없이 밥집으로 보이는 <누리마을 감자탕>에 들어갔다.
밥집이 밤에는 주점 역할을 했다. 식사 메뉴가 안주로 충분해 보였다. 서너 테이블에 손님이 앉았고 한 좌석은 상욕을 마구 섞어가며 마셔댔다. 욕이 입에 붙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듯한 자리에는 소주병 다섯 병과 누군가의 휴대폰이 얹혀 있다. 테이블을 말끔히 치우지 않은 상태였다. 60대 후반은 돼 보이는 아줌마가 혼자 서빙을 하느라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메뉴판을 보니 안주류가 최소 삼만 원 이상이다. 소주 한 병 마시기에 양도 많고 벅차다. 제일 싼 내장탕(10,000원)과 참(5,000원) 한 병을 주문했다. 한참 만에 나온 내장탕은 양만 들었다. 다른 부속물 따위는 없고, 잡내도 나지 않았다. 탕이 구수하고 부드러워 소주 안주로 딱 맞았다. 한 병을 마시는 동안 취한 좌석의 욕설이 듣기에 아슬아슬했지만, 새벽 술(曉酒)맛은 꽤 좋았다. 안 먹으려고 생각한 공깃밥까지 반을 먹었으니까. 가장 늦게 들어가 제일 빨리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속이 든든해 새벽 찬 기운도 아무렇지 않았다. 눕자마자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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