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 있으면 아파진다

2022. 10. 5. 00:17일상다반사

728x90

이 년 전, 대표(代表)가 화분 다섯 개를 창가에 들여 놓았다. 빈 공간이 생기가 나고, 녹색 분위기도 그럴싸했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그림자로 한 폭의 수묵화가 그려졌다. 주일에 두 번씩 물을 주며 애지중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억이 아름아름한다. 어느 날 다육 식물 염좌에서 하얀 뭔가가 끼었다. 조금씩 많아지더니 옆의 옆의 옆의 재스민 화분까지 오염되었다. 다행히 열대성 식물인 테이블 야자와 유카는 괜찮았다. 꽃집에 갔더니 '실내는 바람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진딧물'이라면서 '물로 깨끗이 샤워시켜 약을 살포해야 한다'라면서 분무기에 담긴 약 'ㅇ깍ㅇ진'을 내놨다.

재스민과 염좌 화분을 화장실로 옮겨 샤워시키니 진딧물이 많이 씻겨 나갔다. 물을 말린 후 ㅇ깍ㅇ진을 분무했다. 며칠 뒤, 옆에 놓였던 테이블 야자와 유카에 분무 약이 튀어서 잎이 새까맣게 말라 들어갔다. 유독 열대 식물만 이 현상이다. 옥상으로 옮겨 변색한 부분을 자르거나 걷어냈지만, 아직껏 원래 모습이 돌아오지 않는다. 분무기 약통에 적힌 ‘ㅇ깍ㅇ진은 장기간 사용하여도 식물에는 피해가 전혀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무색했다.

다른 꽃집에서 '프ㅇ킬'을 사 와 몇 차례 살포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승인을 받은 것인데도 독성이 강한지 분무하면 식물이 시들시들해졌다. 그렇다고 진딧물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화초가 죽을까 봐 더 이상 약을 치지 않았다. ㅇ깍ㅇ진은 통째로 남았고, 프ㅇ킬은 그나마 소진됐다.

두 달 전쯤, 지인과 통화하면서 화분 상태를 말했더니 ‘물은 4주에 한 번’ ‘실내는 바람이 없으니 선풍기라도 틀어주라’고 말했다. 신기했다. 그렇게 하였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한 식물이 파릇파릇해지고 진딧물도 눈에 띄게 줄었다. ‘병 자랑은 해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동안 애를 태웠다. 유경험자 조언을 따르니 약품을 쓰지 않고도 물과 바람만으로 천천히 천천히 회복되고 있다.

화초를 가꾸면서 알았다. 물을 그저 많이 주는 것도 생육에 과유불급이고, 사람이나 화초나 갇혀 있으면 병들어 신음한다는 것을. 생명은 흘러야 한다. 고여 있으면 아파진다.


재스민, 유카, 염좌 / 선풍기 바람을 쏘여 준다.
옥상으로 임시 옮긴 유카와 테이블 야자. 아름답던 모습이 'ㅇ깍ㅇ진'으로 몰골이 사납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범어역 6번 출구 그라피티  (0) 2022.10.07
구름 미사일  (0) 2022.10.06
우연히 만난 노부부의 열정  (0) 2022.10.03
어제의 교훈  (0) 2022.10.02
물봉선화야 고맙다  (0) 202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