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 08:08ㆍ여행의 추억
거리귀신이 붙어 있어 경산 사는 것이 행복하다. 가까운 거리에 가볼 곳이 수두룩해서다. 아침 먹고 우두커니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며칠 전 경산 소식지인 '우리 경산'에서 읽은 '난포 고택'이 떠올라 내비를 검색하니 16km밖에 안 된다. 어제 딸이 가져다준 대추를 한주먹 쥐고 나와 먹어가며 차를 몰았다. 씹을수록 달달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라고 명상했다. 몇 줄의 말 속에 일생을 담아낸 시인이 존경스럽다. 사람의 삶도 대추 한 알과 다름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경북 유형문화유산인 <난포 고택>은 한길가에 있었다. 낮은 흙 담장 안에 시커멓게 보이는 한옥이 예스러웠다. 현장 안내판을 먼저 읽었다. 1545년에 최철견(1525~1594)이 지은 고택이다. 거의 오백 년 된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니 솟을대문이 굳게 잠겼다. 담장 넘어 들여다보니 안채에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대문을 두드리니 댕댕이가 쫓아 나와 몇 번 짖더니 돌아 들어가 버린다. 아쉽지만 담 밖에서 사진을 몇 커트 찍고, 인터넷을 검색(한국학중앙연구원)하니 동명이인 최철견(1548~1618)이 나왔다. 본관이 전주로 난포의 본관 영천과는 달랐지만, 1592년 전라도사로 재임한 기록이 같았다. 같은 해 두 사람이 같은 직책을 맡았을 리 만무하니 후대의 정리에 착오는 없는지 모르겠다. -오백 년 된 고택을 둘러보지 못하고- 그냥 가려니 조금 서운했다. 집사람이 "운문댐 구경"하러 가면 좋겠다고 권했다.
청도 <운문댐>은 난포 고택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올여름 가뭄에 저수량이 심각했는데 만수에 가까워진 물이 바다 같았다. 경산은 이 물을 공급받아 수돗물로 사용하기에 가득한 물을 보니 마음이 풍요롭게 느껴졌다. 물 사용량은 갈수록 느는데 수자원 고갈이 점점 심각해진다니 한편으로 막연한 걱정도 됐다. 망향정에 앉아 시간을 보내니 우리 부부 같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들렀다가 어디론가 떠났다. 노년을 소일하는 방법이 별다르지 않고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돌아오는 길은 점심때가 지나서 예전의 '성화 축산' 자리에 들어선 <효성 축산>에 들러 쇠고기국밥을 먹었다. 시장기 때문인지 이 일대의 국밥 중 최고로 시원한 맛이었다. 감칠맛이 여운으로 남아 육회 소짜를 추가로 주문했다. 후식으로 양이 많았지만, 투뿔 육회를 남길 수 없었다. 난포 고택, 운문댐 나들이가 맛난 점심으로 마무리돼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경산에 살면서 누리는 쏠쏠한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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