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5. 10:10ㆍ여행의 추억

구미까지 와서 점심만 먹고 돌아서기 아쉬워 금강사에 들렀다. 역에서 200미터 남짓한 거리라 접근이 수월해, 열차 대기 시간에 맞추어 잠시 들르기 좋은 절이었다.
구미역사 뒤편으로 나서자 큼직한 일주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서니 ‘금오산 금강사’라 적힌 편액이 단정하게 걸려 있다. 전각의 왼쪽 하단에 정우(正愚, 현재의 주지) 스님이 썼다는 관지가 보인다. 일주문 외에도 안양문, 대웅전, 극락전, 조사전 등 편액 전부를 그가 썼다.

일주문을 지나면 반대편으로 안양문이 나 있고, 창건주 철우 선사와 그의 스승 혜월 선사의 탑비와 부도가 나란히 있다. 그 뒤로는 푸른 물결처럼 일렁이는 대숲이 펼쳐져, 절집의 고요를 한층 깊게 만든다.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언덕 위 경내로 오르니, 일주문에서 이어진 찻길과 자연스레 합쳐진다.
제법 널찍한 터 위에 대웅전이 중앙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좌우로 극락전과 석탑 등 여러 전각이 우러르듯 배치됐다. 금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지사 말사로, 1954년 철우 선사가 창건했고, 철우 선사 입적 후에는 정우 스님이 주지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극락전, 조사전, 심우당, 채월당, 범종각 등이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가장자리에 7층 석탑 1기가 서 있다. 마당 한켠에 세워진 ‘금강사 중창 불사 시주 공덕비’를 보니, 200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됐음을 알 수 있다. 지역 문화유산으로는 석조석가여래좌상과 금동관음보살입상, 금강사 금란가사 등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대웅전에 참배하고 탑돌이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금강사는 바쁜 길 위에서 여행객에게도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고마운 쉼터 같은 도심의 사찰이었다. 열차 시각에 맞추어 다시 구미역으로 돌아와 대경선에 올랐다. (2026.3.22.)

대웅전

대웅전 내부. 삼불좌상 아래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유리 상자로 보호 돼 있어 법당문으로 비치는 햇빛의 반사가 심했다.

구미 금강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큰 형태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은 위쪽으로 갈수록 커지고, 목에는 1줄의 선이 있다. 얼굴은 둥글넓적한 모습으로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을 걸치고 손 모양은 설법인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은 철우 스님이 금강산 폐사지에서 수습했다. 복장물에서 조선 숙종 27년(1701)에 제작돼 금강산 법화원(法華院)에 처음 봉안한 기록이 나왔다.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의 기법이 잘 드러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 자료 요약)

2010년 조성한 7층 석탑. 탑돌이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번만 돌았다.

창건주 철우 선사와 그의 스승 혜월 선사의 탑비와 부도가 나란히 있다.

* 구미 금강사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보지 못해 국가유산청 자료를 찾아 발췌 요약했다.
금강사를 창건한 철우 스님이 금강산에서 수행할 때 석조석가여래좌상과 함께 폐사지에서 수습해 봉안해 온 것이다. 높이 30cm, 어깨 폭 11cm, 대좌 높이 5.5cm, 대좌 지름 12cm다. 불상의 특징은 오른손에 든 바구니에 물고기가 담겨 있는 것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또 옷 부분에 어자문(魚字文)이 가득 시문 돼 있다. 조성 시기는 10-11세기경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금동불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구미 금강사 금란가사는 보지 못해 국가유산청 자료를 찾아 발췌 요약했다.
금란가사는 석가여래부처 당시에 부처의 이모였던 마가파도파제 부인이 부처께 금색의(金色衣) 또는 금란가사를 한 벌 지어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때부터 금란가사 또는 금색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열리는 큰 행사에서 당대 최고의 고승인 증명법사(證明法師) 한 사람만 입는 법의였다.
금강사 창건주인 고 철우선사(鐵牛禪師)의 금란가사는 철우선사의 스승인 혜월선사(慧月禪師)에게서, 또 혜월선사의 스승이며 당대 고승인 경허선사(鏡虛禪師)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경허선사는 1898년 봄 가야산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해인사에 계시던 중 그해 가을에 국왕의 칙명으로 추진한 장경간행불사증명(藏經刊行佛事證明)으로 계실 때 왕실의 왕비 및 궁녀들이 증명법사인 경허선사께 지어 준 것으로 추정된다.

매화를 심는 이유는 엄동설한을 이겨내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강인한 생명력과 고결한 절개라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한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범종각.
참고로 매화 명소로는 양산 통도사 자장매, 구례 화엄사 화엄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가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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