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DAY | 폰세바돈 > 뽄페라다
2019.4.11.(목), 맑음.
27.6km(591.8km) / 8시간 2분
여섯 시에 일어나 간단한 조식을 마친 후 알베르게를 나왔다. 밤새 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얼어 도로가 빙판길이 돼 있었다. 조심스레 언덕을 올랐다. 아침 해가 찬연스럽게 폰세바돈에서 지평선까지 비추었다.
삼십 분을 더 오르니 1,530m 정상에 철 십자가La Cruz de Ferro가 나왔다. 철 십자가는 5미터 정도의 나무 지주 꼭대기에 얹혀 있어 조그맣게 보였다. 켈트인들은 산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산 정상이나 고갯마루에 돌을 놓는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관습에 순례자들도 무사 안녕을 빌며 철 십자가에 돌을 던진다. 돌무더기에 올라가니 가족이나 친구,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사진, 이름이 적힌 돌들이 소원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전 세계인들이 순례를 오면서 미리 준비해 온 돌이었다. 우리는 미처 가져오지 못해 주변의 작은 돌을 주워 던지려고 했다. 그때 산을 함께 올라온 독일 여성이 “뒤돌아서서 돌을 던져야 한다.”라며 흉내까지 내며 알려주었다. 그대로 따라 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카미노에서 우리는 그녀와 친해졌다. 돌무더기 옆 현지 안내판에 '모든 순례자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돌을 가져와 십자가 주변에 놓으면, 살아오면서 갖게 된 모든 짐과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다만 돌은 자신의 죄만큼 커야 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빈터에 철 십자가를 세우고 의미를 부여하니 그 자리가 특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미는 사람을 유혹하는 재료다.
철 십자가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마하린이다. 마치 고물상 같아 보이는 돌집이 있었다. 전기와 샤워 시설 없이 잠자리만 제공하는 알베르게였다. 낡은 깃발이 힘없이 나부끼고 고물로 얼기설기 덧대어 놓은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전망은 뛰어났다. 눈앞에 펼쳐진 깐따브리아산맥Cordillera Cantábrica의 연봉이 반원을 그렸다. 일망무애라고나 할까. 하얀 백발을 덮어쓴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마치 히말라야 만년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동행하던 우성현이 알베르게에 들어가 차 한잔하겠다면서 뒤처졌다. 순례자다운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배어났다. 전망 좋은 장소에 앉아 휴식하는 사람들 모습도 간간이 보여 그들이 행복해 보였다. 폰세바돈 알베르게에서 느지감치 출발하겠다던 정재형이 어느새 따라붙었다. 그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총거리 4,286km)을 꿈꾸는 사나이로 걸음이 매우 빨랐다. 그의 PCT 종단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열한 시 경 엘 아세보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섰다. 그동안 수많은 마을을 스치면서 본 지붕은 주홍색이었는데, 여기서부터 가옥의 지붕이 모두 까맣다. 평원과 산악지역의 차이인지 알 수 없다.
엘 아세보 마을 초입의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와 콜라로 목을 축였다. 자전거 순례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엄지 척했다. 나도 따라 해주었다. 사실 카미노에서는 언어가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서로의 몸짓과 손짓, 눈치만 있으면 최소한의 소통은 이루어졌다. 오늘은 외국인과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긴말이 필요 없었다. “투게더 픽쳐?” 한마디로 족했다. 외국인도 나와 같았다. 자전거 순례자도 그렇게 말해 기념사진을 남겼다.
엘 아세보 마을 출구에 하인리히 크라우스 기념비Monumento a Heinrich Krause로 불리는 자전거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다가 이곳에서 숨을 거둔 독일인 순례자를 기리는 기념물이었다. 카미노를 걷는다고 무슨 보상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모여든다. 그러다가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죽은 자를 기리는 조형물을 여럿 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편으로 보면 카미노는 불가사의한 가치와 의미가 숨어 있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엘 아세보에서 카미노 사인을 따라 산촌인 리에고 데 암브로스를 거쳐 계곡의 내리막을 지루하게 내려와 도로에 닿았다. 산을 오르는 데 30분, 정상에서 내려오는 데 5시간 걸렸다. 산이 크고 깊어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몰리나세까는 지척이었다.
도로를 걸으면서 바라보니 왼쪽으로는 산 니꼴라스 교구 성당Idlesia de San Nicolas de bari이, 오른쪽에는 라비르헨 데 라스 앙구스티아스 예배당Capilla de la Virgen de las Angustias 종탑이 보였다. 참 인상적이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메루엘로Meruelo 강을 건너도록 만들어 놓은 예쁜 아치형 돌다리 ‘순례자의 다리Puente de Peregrinos’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로마인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기분 좋게 다리를 건너 강변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야외탁자에 몸을 맡겼다. 한 무리의 스웨덴 단체 관광객이 들어왔다. 그들은 버스로 카미노를 순례하는 중이었다. 대부분 중년 부부로 어린이가 맬 정도의 작은 배낭을 어깨에 걸쳤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감흥이 채가시지 않았는지 조금 시끄러웠다. 하지만,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표정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갈 길이 멀어 식사 후 바로 일어났다.
몰리나세까 마을 길 끝에는 삼각형 모형의 작은 분수가 있었다. 멀리 응시하는 순례자 상Monumento El Peregrino이 꽤 괜찮아 보였다. 모서리 부분에 '일본에서 지원받아 만들었다'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문득, 오래전 캐나다 부차드 가든에서도 일본이 투자해 만든 '일본식 정원'을 보았는데, 우리나라도 정치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소소하고 섬세한 외교력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몰리나세까에서 뽄페라다까지는 거의 순탄한 도로였다. 깜뽀에서 30분을 더 걸어 뽄페라다 도심의 시작점인 마스까론 다리Puente Mascaron에 도착했다. 카미노 사인이 보이지 않아 행인에게 공립 알베르게를 물으니 친절히 위치를 알려준다. 멀지 않은 가까운 곳이었다.
드디어 산 니콜라스 데 플루에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정원 가장자리의 ‘A SANTIAGO 210KM’라고 적힌 표지석이 가장 먼저 맞아준다. 오늘까지 22일간 591.8km를 걸어왔다. 하루 평균 26.9km를 걸었으니, 예정보다 일정이 삼일 정도 앞당긴 셈이다. 지치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지금까지 잘해 왔다. 앞으로, 남은 여정 210km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배낭을 풀고 휴식한 후 마켓에 갔다. 난생처음으로 손바닥 길이보다 큰 대형 고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기했다. 장을 본 후 레스토랑 멘시아에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보통 3코스로 나오는데 이곳은 4코스였다. 평소보다 양이 푸짐해 과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