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1 DAY | 아스또르가 > 폰세바돈

그러려니하며살자 2025. 1. 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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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0.(수), 비 후 갬 반복.
27.3km(564.2km) / 7시간 24분



소모사의 카미노 표지석


아침 여섯 시, 복도에서 성가가 들렸다. 알베르게에서 처음으로 들려주는 음악 서비스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화음이 마치 천상의 소리 같았다.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찌든 영혼을 말끔히 씻어 주는 느낌이다. 비록 녹음이었으나 엄숙히 흘러나오는 성가는 세상의 잡념을 지워버리고 순수하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카미노 사인이 대성당으로 향했다. 간간이 비가 내려 우의를 껴입었다. 성당들은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 그런 성당을 하루에도 몇 곳이나 지나간다. 지금 걷고 있는 카미노도 한 순교자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 길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순례자에게 던져준다. 마음이 무겁다. 마땅하게 내놓을 변명이 없다. 그럭저럭 살아온 세월, 뒤돌아보면 후회도 적지 않다. 평소와 다르게 번민이 가득 차는 걸음이다.

광풍이 끊임없이 힘겹게 불었다.


마을 출구를 벗어나 도로와 나란히 걸었다. 마을 이름이 적힌 푯말 여러 개를 지나쳤다.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마을을 벗어나니 들판 길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떴다. 탄성이 나왔다. 어서 오라는 듯 유혹한다. 무지개가 핸드폰 화면에 다 들어오지 않아 뒷걸음질 쳤다. 멀리까지 물러서도 담기지 않아 셀카로 찍었다. 표정만 익살스러웠다. 무지개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 마을에 다다랐다. 무지개는 신비로웠지만 맞바람이 아주 심해 걷기 힘들 정도였다. 마을의 낮은 돌담들이 제주도 돌담을 연상시켰다. 쉬지 않고 두 시간쯤 힘들게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소모사에서부터 카미노 안내 표석에도 무지개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무지개 향연이 자주 벌어진다는 사인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라바날 델 카미노까지 가는 세 시간 동안 무지개가 여러 차례 떴다가 사라졌다. 들뜬 마음으로 산악지역 초입에 있는 라바날 델 카미노에 도착했다. 이 마을엔 펠리페 2세가 지나가다가 밤을 보낸 방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후 폰세바돈으로 향했다. 카미노의 건물은 겉보기와 달리 내부는 아름답게 꾸며져 멋있었다.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올라갈수록 구릉지와 계곡의 조망이 좋아졌다. 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봄꽃이 피어나 자태를 뽐냈다. 비로소 계절이 봄인 것을 느끼게 했다. 기분 좋은 숲길을 한 시간가량 오르니 먼 언덕 위에 하늘을 등진 마을이 보였다. 오늘 목적지 폰세바돈이다, 카미노 프란세스에서 하늘 아래 첫 동네였다. 산 밑에 비가 오면 이곳엔 진눈깨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래선지 희끗하게 잔설이 남아 있었다.

폰세바돈 입구 십자가
베드버그 발생했다는 알베르게


마을 진입도로 한가운데에 십자가가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았다. 비탈을 따라 몇 채 안 되는 주택이 좌우에 늘어섰다. 비가 온 후여서 흙탕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마을 입구의 한 알베르게는 베드버그(빈대)가 발생해 문을 닫았다. 소문만큼 베드버그가 많지는 않지만, 알베르게 숙박 시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공영 알베르게에 갔다. 실내가 어둡고 난방이 안 되어 사설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주인이 친절하고 시설이 깨끗해 등록했다. 공용 주방이 없었다. 저녁을 알베르게 식당에서 사 먹어야 했다. 우리는(우리 넷, 우성현, 정재형) 각자 휴대폰을 꺼내 메뉴판을 번역해 원하는 요리를 주문했다. 구글 번역이 참으로 해괴했지만, 음식은 정상 요리로 맛있었다.


카미노 마을 입구 표지판.
카미노 마을 출구 표지판. 빨간 줄이 대각선으로 그어져 있다.

폰세바돈 사설 알베르게 La Posada del Dru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