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DAY | 산 마르띤 델 카미노 > 아스또르가
2019.4.9.(화), 오전 비, 오후 갬.
22.9km(536.9km) / 5시간 12분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와인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모두 컨디션이 좋았다. 부지런한 알베르게 관리자가 빵을 구워놓았다. 우리 또래일 것 같은데 머리가 벗어지고 구레나룻에 두꺼운 돋보기를 꼈다. 준비된 음식을 먹으라는 시늉을 손짓으로 표현할 뿐 말이 없었다. 숙박 등록할 때부터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랬지만, 하여간 말수가 적은 인상적인 양반이었다. 여덟 시 정각에 도네이션 통에 비용을 넣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비가 오려는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노란 화살표가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십여 분 뒤 까날 델 빠라모에서 전원 길로 접어들었다. 붉은 황토밭이 온통 편편옥토처럼 보였다. 구경도 잠시, 카미노 사인은 공장지대의 도로변 센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끄무레한 날씨가 드디어 비를 뿌렸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 마을에 들어서니 카미노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오르비고 다리가 나왔다. 로마 시대에 축조되어 여러 시대에 걸쳐 스무 개의 아치로 보강돼 까미노에서 가장 긴 다리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아치도 있었다. ‘명예로운 걸음의 다리Puente del Passo Honroso’라는 이름으로 순례자들에게 든든한 품을 내준다. 옛일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다리 중간엔 당시의 사건을 설명한 안내판이 서 있었다.
[기사의 약속] 1434년 레온 출신의 기사 ‘돈 수에로 데 끼뇨네스Don Suero de Quinones’는 그의 연인, 도냐 레오노르 데 또바르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에 돈 수에로는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시로 목둘레에 쇠로 만든 깃을 달고, 다리를 지나는 유럽 최고의 기사들에게 다리 위에서 마상 창 시합을 하자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300개의 창이 부러질 때까지 싸워 승리하여 그 깃을 수호하기로 했다. 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의도였다. 많은 기사가 도전에 응했고 돈 수에로는 아홉 명의 동료와 함께 한 달 동안, 다리를 지나는 기사들과 결투했다. 돈 수에로는 300개의 창이 부러질 때까지 싸워 승리했다. 그는 이 승리로 인해서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자유의 상징인 은으로 도금된 족쇄를 성 야고보에게 바치기 위해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났다. 현재에도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그가 바친 은 족쇄가 보존돼 있다. 돈 수에로는 24년 뒤 이 다리 위에서 또 다른 결투를 하다가 죽었다. (발췌: 대한민국 순례자협회에서 요약)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 마을 출구에서 카미노가 갈라졌다. 직진하는 길과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두 길은 산또 또리비오 십자가 Cruceiro de Santo Toribio에서 합쳐진다. 도로 바닥의 카미노 사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지형상으로 오른쪽 길이 좀 더 멀 것 같아 직진했다. 잠시 후 도로가 나왔다. 비가 조금씩 거세졌다. 도로와 나란히 가는 센다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걷는 내내 비가 내렸다. 도로를 가로지를 때는 달리는 자동차를 조심해야 했다. 차를 유심히 살펴보니 트럭에는 적재함이 다 설치돼 있었다. 화물칸이 개방된 트럭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열한 시 반, 산또 또리비오 십자가에 도착했다.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아스또르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서 오는 오른쪽 길과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후에 알고 보니 순례자들은 도로보다 오른쪽 흙길을 더 애용한다고 들었다. 내리막길 끝에 수돗가가 나왔다. 수돗가에는 목마른 순례자가 물을 마시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아스또르가 직전 마을인 산 후스또 데 라 베가 마을이 보였다. 비를 맞아서인지 배고픔과 한기를 느꼈다. 산또스 후스또와 빠스또르 성당Iglesia de los Santos Justo y Pastor 앞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들어서니 천장이 뻥 뚫려 있어 몹시 추웠다. 다른 카페로 갈 수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왜 샌드위치까지 주문했는지 모르겠다. 덜덜 떨면서 맛없는 그것을 먹었다. 가격도 카미노에서는 비싼 편이었다. 순례자 메뉴(순례자들에게 제공하는 정식(定食)으로 와인까지 제공)가 10유로인데, 작은 샌드위치 하나와 케페콘레체 한 잔에 5.5유로였다. 비가 그쳤다.
공장지대를 지나고 철길을 건너 약간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공립 알베르게 시에르바스 데 마리아Siervas de Maria가 나왔다. 알베르게 앞에 멋을 부린 순례자 상이 눈길을 끌었다. 숙박 등록하고 시가지 탐방에 나섰다. 시청, 산따 마리아 대성당과 가우디가 설계한 빨라시오 에삐스꼬발Palacio Episcopal(주교궁) 건축물을 보았다. 주교궁에는 사연이 많았다. 건축 공사를 지휘하던 그라우 주교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건립위원회에서 건물의 형태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공사 중단을 요구해 결국 가우디가 물러났다. 그 후 교구 건축가는 주교궁을 계속 지으면서 가우디의 천재성과 특성을 곳곳에 반영했다. 하지만, 가우디가 본래 추구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지어졌다고 한다. 남의 나라 사연이더라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오늘 카미노는 비가 오전 내내 내렸다. 하지만 도로와 나란히 걸은 덕분에 진창길을 피한 운수 좋은 날이기도 했다. 시가지 탐방 후 마켓에서 장을 보고, 휴대폰 충전기를 새로 샀다.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외국인들과 주방에 모여 담소를 즐겼다. 영어를 모르는 나는 와인만 몇 잔 마셨다. 소주 생각이 났다.
■ 아스또르가 시청 Ayuntamiento
쌍둥이 탑과 시계탑이 있다. 시계에는 마라가또 전통 복장을 한 남녀 두 사람이 망치로 종을 치는 모습이 형상화돼 있다. 시계는 정시를 알려주지만 15분, 30분, 45분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유는 이 시계를 만든 장인이 인색한 도시 주민들을 비웃으며 ‘시간은 알려주지만 15분은 알려주지 않겠다.’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토리 텔링일지 모르겠다.
■ 산따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ia
아스또르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자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최고의 성당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확장하면서 고딕 양식이 됐는데, 아직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소가 남아 있다. 성당 내부의 위엄의 성모상은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이다. 합창단석의 조각 중엔 카드놀이를 하면서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람이 있다. 유럽인들의 흡연 습관을 보여주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 주교궁 Palacio Episcopal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환상적인 현대 건축물이다. 원래 주교의 거처로 건축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카미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로마 성벽 Muralla Romana.
공립 알베르게 시에르바스 데 마리아 앞 공원에서부터 연이어져 있는 성벽은 로마인들이 회반죽과 돌로 지었다. 성벽은 13세기에 한 차례 보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