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DAY | 엘 부르고 라네로 > 레온
2019.4.7.(일), 맑은 후 저녁 비.
37.5km(487.5km) / 8시간 34분
오전 일곱 시인데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곤히 자고 있어 조심스레 거동했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37km를 걸어야 하기에 걸음을 서둘렀다. 지평선도 아직 어둠에 덮였다. 한 시간쯤 부지런히 걸으니, 동이 텄다. 아침노을을 받은 들녘이 벌겋게 타올랐다. 떠오르는 태양이 뿜어내는 빛은 신의 은총처럼 우리 앞을 밝혀 주었다. 이때가 되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성스러움 속에서 카미노를 걷는 기쁨을 맛본다. 일행의 뒤를 따르면서 그림자놀이를 즐겼다.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고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혼자 재미에 빠진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니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실없는 공상을 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너고 그라피티가 그려진 철둑 다리 밑을 지나 다음 마을인 렐리에고스에 닿았다.
마을 어귀의 순례자 동상을 지나자, 밀밭이 펼쳐졌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들판 너머로 하얀 눈을 덮어쓴 깐따브리아 산맥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카미노가 평탄해 빨리 걸었다. 시원스레 뻗은 도로 위에 육교만 건너면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마을이다. 오늘 목적지 레온까지 19km가 남았으니 딱 반을 온 셈이었다.
마을 끝을 지나는 에슬라 강 위 돌다리를 지나 센다를 따라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를 통과해 뿌엔떼 비야렌떼에 도착했다. 하얀색 건물의 바르가 보였다. 상호가 ‘카사 블란카’이어서 ‘꿈꾸는 카사블랑카, 언덕 위의 하얀 집’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기에 생맥주와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어제 사둔 바나나와 미스 타이완이 준 삶은 달걀로 점심을 먹었다. 매일 걸으려면 체력 관리가 우선이다. 그런데 오늘은 식욕이 나지 않았다. 점심으로 바게트나 바나나 한쪽, 주스 한 잔으로 족했다. 그렇다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카미노는 체력을 단단히 다져주는 곳이다.
저 멀리 유모차를 끌고 젊은 부부가 걸어왔다. 우리들 가까이에서 엄마가 아기 기저귀를 갈았다. 그런데 담배를 물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가 담배를 피우며 아기를 돌보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끼리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흡연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문화가 어쩌면 콜럼버스 효과일지 모르겠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도로를 가로질러 카미노 사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짧은 숲길을 나가니 독특하게 휘어진 비야렌떼 다리Puente de Villarente가 눈에 띄었다. 무려 20개의 아치로 된 다리는, 차량을 교대로 통행시키면서 보수 중이었다. 카미노는 다리 옆으로 나 있었다.
도심이 가까워졌는지 가로변에 건물이 많아졌고 차량 통행도 잦았다. 찻길 보다 보행자의 인도가 훨씬 더 넓었다. 그 길을 따라 카미노가 이어졌다. 도심을 지나니 공동묘지, 공장, 창고단지가 연이어 오르막을 내놓았다. 지루한 나머지 창고 그늘에 앉아서 한참 쉬었다. 사인을 따라 다시 걸었다. 파란 페인트를 칠한 철제 육교를 건너면 뽀르띠요 언덕이다. 레온 시가지가 엎드린 듯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레온 대성당 첨탑이 조그맣게 보였다. 레온을 향해 언덕 내리막을 잔달음질하며 내딛뎠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오늘 카미노는 자연과 문명이 공존했다.
오후 세 시, 드디어 레온에 진입했다. 레온은 서기 68년에 로마인들이 세운 도시였다. 깨끗하고 밝아 보이는 도시 분위기가 마음을 끌었다. 사십오 분쯤 더 걸어가 공립 알베르게 모나스떼리오 데 라스 베네딕띠나스(산타 마리아 데 까르바할)Monnasterio de las Benedictinas(Santa Maria de Carbajal)에 등록했다. 침상을 배정받아 들어갔다. 정재형, 김효겸 등 먼저 온 한국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씻고 거리로 나섰다. 레온 대성당과 가우디 건축물 까사 보띠네스를 외형만 잠깐 둘러봤다. 어마어마한 장관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레온 대성당은 13~14세기에 걸쳐 완성된 고딕 양식으로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가져온 모티브로 지어졌다. 이런 사실로 '프랑스식 스페인 대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장기가 돌았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레스토랑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일요일은 휴무라고 했다. 도시에서 식사할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빵으로 얼요기를 했다. 생활 풍속이 우리나라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쪽은 물가도 싸고 황금만능의 삶이 아닌 모습이 눈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