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

경주 문화원에서

그러려니하며살자 2024. 12. 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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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신라 천 년의 이미지와 함께 조선 시대의 자취도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월요일 오전의 경주 문화원은 조용했다. 조선 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이었던 경주 문화원은 1915년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 분관이 설치됐다. 이때 경주읍성 남문 밖에 있던 국보 성덕대왕신종과 종각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광복 이후에도 경주박물관으로 이용하다가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건립되자 신종을 다시 옮겨 가고 종각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경주부 관아 건물은 현재 향토사료관으로 경주읍성 복원도와 조선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향토사료관 앞의 전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왼쪽(서쪽) 나무는 1926년 방한한 스웨덴 황태자가 기념식수를 했고, 비슷하게 자란 오른쪽(동쪽)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표식이 없었다. 어림짐작하니 박물관 개원 당시 초대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이거나 1929년 방문한 덕혜옹주가 아닐까 싶었다. 답사의 재미로 상상한 것이니 실례되지 않으면 좋겠다. 뒤편의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경주 문화원은 천년고도 경주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 전승하는 사업을 하는 곳으로 향토사료관은 경주의 조선시대 모습을 폭넓게 알리고자 개관했다. 몇 년 전 우연히 방문했을 때 '경주 문화원 정기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덕분에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귀한 서책을 얻어 감사해했던 적이 있다. 범부의 눈에는 문화원이 아담하고 소박해 보여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옛 경주 부윤의 생활 공간이었던 내아(內衙)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2024.12.2.)


성덕대왕신종을 달았던 종각. 18.9톤이나 되는 신종의 무게를 지탱하려고 건물 안쪽에 6개의 기둥과 보가 있다.
1915년 성덕대왕신종 이건(사진 출처: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 왼쪽 전나무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1926년 10월 9일 황태자 시절에 방한해 기념 식수했다.
조선 정조 때 제작된 경주읍내전도. 채색 필사본으로 관부 건물을 거의 빠짐없이 그렸다.
동헌 삼문에 걸려 있었던 경주군청 현판. 글씨는 개항기의 서화가이자 민족운동가였던 석재 서병오 선생이 썼다.
조선 순조19년(1680) 경주시 서부동에 세워진 양무당의 부속건물로 무관(武官)들이 집무하던 건물을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