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장과 고운대
* 상서장(上書莊)
* 경상북도 기념물
* 현지 안내판 요지
상서장은 신라 말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고운 최치원(857~?)이 시무십조(時務十條; 진성여왕에게 건의한 정책, 그 내용은 전해오지 않음)를 쓴 곳이다.
최치원은 12세 되던 해인 경문왕 8년(868)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헌강왕 11년(885)에 귀국해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고자 애썼다. 특히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 지리산 등 명산을 찾아 자연과 벗 삼아 지내다가 여생을 마쳤다. 고려 현종 때 문창후에 추봉되고, 공자묘에 배향하도록 했다. 이때 최치원이 머물며 공부하던 이곳을 임금에게 글을 지어 올린 집이라는 뜻에서 상서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고종 때 건립한 비가 남아있고 상서장과 영정각, 추모문 등이 있다.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해 매년 4월, 제사를 지낸다.
* 답사 노트 :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치게 된 데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선생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찾아갔다. 상서장은 높다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상서장까지 가파른 계단이 높다랗다. 오른쪽에 비탈길이 나 있어 계단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상서장을 둘러봤다. 인적 없는 탓인지 쓸쓸하고 적막했다. 고운대(孤雲臺)에는 시멘트로 만든 단이 귀퉁이가 삭아 떨어져 보기에 무상했다. 안내판도 노후해 글씨가 퇴색되고 때가 묻어 꾀죄죄했다. 고운대는 주차장 왼쪽에 있는 바위다. 높은 곳으로 상상했었는데 상서장보다 낮은 곳이었다. 고운대에 서서 -신라는 쇠퇴하고, 신생 고려가 부상하던- 그 시절 선생의 고뇌를 그려보면서 한동안 서성거리다 막막한 발길을 옮겼다. (2024.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