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와 포석정지
첨성대(瞻星臺)
경주하면 가장 먼저 첨성대가 생각난다. 유년 시절 수학여행 와서 본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기억이 각인돼 첨성대 주변의 잘 단장된 분위기가 오히려 낯설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안내소 외벽에 써놓은 선덕여왕의 '하늘을 알면 세상이 보일 것이다'라는 글귀가 심오하게 다가왔다.
안내문에 의하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천문 관측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후대의 복원 없이 창건 당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람이 가운데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라고 해 사다리를 놓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별을 관찰했다.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별의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포석정지(鮑石亭址)
평일이어선지 포석정지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사무실(매표소)의 여사무원이 반색하며 맞았다. 내부에 포석정 조형물을 조성해 놓았다. 유구의 물길을 따라 물이 졸졸거리며 흐르고 있어 천 년 전의 영화를 반추하는 듯했다. 포석정지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가야 볼 수 있었다. 주변이 단장됐지만,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로 쓸쓸한 풍경을 자아냈다.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이궁(離宫)으로 연회를 베풀던 장소다. 천백 년이 지난 현재는 정자 등 건물은 사라지고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즐기던 석조 유구만 남아 있다. 927년 11월 겨울에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비빈, 종실 친척들과 연회를 벌였다. 잔치를 베푸느라 후백제 견훤이 습격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여 공격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역사는 56대 경순왕으로 이어졌으나 국력이 쇠락하여 935년 백관을 이끌고 개경에 가서 고려 태조에 귀순함으로 신라 천 년(992년)의 막을 내렸다. 포석정은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만 불어 처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돌아서는 발길이 가볍지 않았다. (202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