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옥룡암에서
며칠 전, 일어서는 바람을 따라다니는 풍운의 박 작가가 <옥룡암(玉龍庵)>에 꼭 가보라며 단풍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프로 수준이었다. 마침, 경주 나들이하는 참이라 추천받은 옥룡암을 먼저 찾아갔다. 옥룡암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가 1936년과 1942년 정양 목적으로 머물렀다고 전한다. 신석초 시인이 공개한 이육사 서한에서 그가 '불국사로 가는 도중의 십 리 許(허)에 있는 옛날 신인사의 古趾(고지)의 조그만 암자'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육사는 이 시기에 詩 청포도를 구상했다는 증언이 있다.
마을 어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고즈넉한 길 한쪽으로는 하천이 잘 정비됐다. 주택이 끝나는 부분부터 아기단풍 터널이었다. 하천으로 축 늘어진 울긋불긋한 단풍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만추의 아름다움이 한 폭에 담겼다.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아기단풍으로 뒤덮인 안양교(安養橋)가 일주문을 대신했다. 다리 아래 수면 위에 흩뿌려진 단풍잎들은 별을 쏟아놓은 것 같다. 많은 탐방객이 인생샷을 건지려고 안양교를 떠나지 않는다. 단풍 대궐을 벗어나니 전망이 트이면서 대웅전이 지척이다. 절이 예쁘다. 아니 절보다 분위가 더 예뻤다. 대웅전 옆 전각에는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된 一爐香閣(일로향각) 현판이 걸렸다. '한 마음을 화로에 넣어 담금질해 향기를 만든다'는 뜻.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쓴 글씨인데 진품인지 알 수 없다. 뒤로 우뚝 솟은 큰 바위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마애불상군(보물)이다. 옥룡암에서 단풍에 취하고, 이육사 시인과 김정희 선생을 그리니 마음속에 인걸 절경을 담은 셈이다. 내년 단풍철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202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