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홍탁과 홍어삼합

그러려니하며살자 2024. 3. 1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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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단골집 <안동 식당>이 도시철도 2호선 신매역 부근으로 이전 개업했다. 이전하기 전부터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 사장님이 친절해 산행 뒤풀이나 정다운 모임을 할 때 즐겨 찾았다. 주로 돼지 수육과 소주로 목을 축이고 잔치국수로 마무리했지만, 가끔 기분을 북돋울 때는 홍탁이나 홍어삼합으로 분위기를 잡기도 했다. 오늘은 산행 중에 일진청풍을 타고 날아든 이전 개업 소식에 행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찾아갔다.

사장님이 활짝 웃으시며 일행을 맞아준다. 개업은 얼마 전 하셨나 보다. 홀이 넓지 않아도 깨끔했다. 미리 연락해 둔 터라 테이블에 밑반찬이 정갈스럽게 비치돼 있었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 홍어와 돼지 수육을 담은 접시를 가져와 테이블 가운데의 빈자리에 놓았다. 쿰쿰한 냄새가 풍겼다. 일행 중에 홍어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덜 삭힌 홍어를 내놨다. 당연히 소주 대신 지역 탁주인 불로 막걸리를 주문했다. 홍탁과 삼합으로 건배하며 이전 개업을 축하했다. 누군가 푹 삭힌 홍어가 당긴다고 말하자 홍어 전이 서비스로 나왔다. 콧구멍이 뻥 뚫렸다. 이때쯤 海德이 막내의 박사 학위 턱으로 음식값을 찬조했다. 손바닥이 뜨거워졌지만, 회비가 고스란히 남았다.

홍어는 삭힌 음식의 대표다. 삭는 것은 발효고 썩는 것은 부패다. 썩은 것은 먹을 수 없지만 삭은 것은 색다른 맛을 낸다. 홍어는 오래 두면 암모니아 발효가 일어나 특유의 쏘는 냄새가 난다. 홍탁은 코가 뻥 뚫릴 정도로 쏘는 삭힌 홍어로 탁주(막걸리)를 마시는 것이고, 삼합은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을 묵은김치에 싸서 먹는 것이다. 삼합은 본래 명리학 용어로 성질이 다른 세 가지[천지인]가 어울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홍어삼합도 명리학의 삼합을 닮은 듯 바다의 해산물과 땅의 고기와 채소의 조화로 일미를 이룬다.

홍어삼합의 본고장은 나주 영산포다. 고려말 조정은 왜구의 피해를 막으려고 공도(空島)정책을 시행해 흑산도 주민을 영산포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주민들은 잡아놓은 홍어를 가지고 떠나왔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로 닷새가량 걸렸는데 홍어가 삭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싱싱한 회로만 먹었는데 형편상 삭은 홍어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홍탁과 삼합의 기원이 됐다. 오늘날 흑산도 홍어는 귀해서 비싼지, 비싸서 귀한 것인지 십 년 전부터 먹어보지 못했다. 범부들이 먹는 홍어의 대부분은 흑산도가 아닌 18,275km 떨어진 머나먼 칠레 해역에서 온 것들이다. 이를 알고도 흑산이라 우긴다. 기분이니까. 어쨌든 홍탁 먹으면서 나도 삭는 법에 익숙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2024.3.17.)

수성구 매호동 133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