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

청도 자계서원

그러려니하며살자 2023. 11. 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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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진산 남산(870m)은 서울 남산, 경주 남산의 아담한 규모에 비해 덩치가 우람하다. 빼어난 경치는 청도를 산자수명한 고장으로 이름나게 했다. 그로 인해 날로 탐방객이 늘어나 멋지고 예쁜 카페가 이백오십여 개나 들어섰다. 청도는 산수뿐만 아니라 역사의 향기도 농농하다.

조선 중기 사관으로 무오사화에 희생된 탁영 김일손(1464~1498)의 가문은 대대로 청도에 살았다. 탁영 선생은 1486년(성종 17)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김종직 문하에 들어가 김굉필·정여창·강혼·남효온 등과 교유했다. 다시 벼슬길에 들어가 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관료 생활 동안 주로 언관(言官)에 재직하였고 훈구파의 불의·부패를 공격하고 사림파의 중앙 정계 진출을 도왔다. 춘추관 사관 재직 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어 1498년(연산군 4) 반역죄로 처형됐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복권되고 순조 때 이조판서로 추증됐다. 김일손이 반역죄로 형벌을 당할 때, 청도천이 3일간 핏빛으로 물들어 사람들이 붉은 시내라는 뜻의 자계(紫溪)로 일컬었다.

그가 죽고 이십 년 뒤, 1518년(중종 13) 청도에서 탁영 선생을 배향하기 위해 운계서원이 창건됐다. 서원은 1661년(현종 2) 자계서원으로 사액 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어 1984년 복원했다. 서원에는 탁영 선생이 심었다는 오백 년 은행나무가 깊어져 가는 가을에 순응하고, 남산은 멀리서 자계서원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2023.11.4.)

남산
자계서원 영귀루와 은행나무, 멀리는 남산.
영귀루에 올라 바라본 자계서원.
영귀루에서 바라본 남산.
유현문
탁영 선생 순절 추모비와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