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삼덕동 관음사

아침부터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대구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라는 도심에 있는 <관음사(觀音寺)>에 갔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외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막상 도착하니 사찰은 그대론데 머릿속의 아련한 추억이 더 아름답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관음사는 대구 유일의 일본식 건축 사찰로 순천 송광사 말사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경 일본인 승려가 창건해 선림사(禪林寺)라고 불렀다. 광복 이후 적산(敵産)*으로 분류돼 신도들에게 매각됐다. 1968년 신자들의 요청으로 원명 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관음사로 사명을 바꾸고, 동화사 말사에서 송광사 말사가 됐다. 본사를 바꾸기는 드문 경우인데, 바꾼 이유는 원명 주지가 14세 때 구산 스님(전 송광사 방장)을 은사로 출가했고, 할아버지뻘인 효봉 스님(조계종 전 종정. 구산 스님의 은사)을 10년 넘게 모신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세수 93세인 원명 주지는 57년째 관음사를 지키고 있다.
1916년 지은 건물은 무설전과 요사채다. 110년쯤 됐다. 그동안 무설전의 기와가 낡아 교체했고, 다다미 바닥을 걷어내고 장판을 깔았으며, 회칠한 벽체를 나무로 바꾸었으나 근대 일본식 양식을 그대로 간직했다. 법당의 안쪽에 좌우 기둥을 세워 불단을 구획하고 관음전 편액을 붙였다. 목조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보현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봉안하고 있다. 지장보살이 약사여래불 같아 보였다. 목조 관세음보살상 복장물을 근래 확인한 결과 불상은 삼백여 년 전에 조성한 것으로 밝혀져 국가유산청의 심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사찰을 창건한 후 불상은 기존 사찰에서 옮겨온 듯하다. 법당 동쪽 벽에 와불 탱화를 유리 액자로 만들어 걸었는데 원본을 훼손한 것이 아닌지 살짝 아쉬웠다. 특이한 점은 법당의 옆면이 정면이 되고, 신발을 신고 들어가 안에서 벗는 구조였다. 하나의 건물을 여러 용도로 이용하는 듯 법당 밖은 무설전, 내부는 관음전 편액이 붙었다. 석탑은 없고 무설전 앞에 일본식 석등 1기가 세워져 있다. 화단에 장식용 탑이 두 기 있다.

국내에 적산 건물 사찰로는 대구 삼덕동 관음사와 군산의 동국사가 유일하다고 하니 문화유산 측면에서 주요한 사찰이겠다. 무설전의 기초로 받쳐 놓은 일련의 돌들을 건물 뒤편(서쪽)에서 볼 수 있었다. 대구읍성*의 돌임을 짐작했다. (2025.5.24.)
* 적산(敵産): 1945년 8ㆍ15 광복 이전까지 한국 내에 있던 일제(日帝)나 일본인 소유의 재산을 광복 후에 이르는 말.
* 대구읍성: 정식 명칭은 대구도호부 읍성으로 1590년(선조 23)에 건설해 1895년(고종 32)에 폐성되고, 1906년(광무 10)에 친일파 관찰사 서리 박중양(속칭 박짝대기)이 불법 철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