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텃밭의 상추

그러려니하며살자 2025. 5. 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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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인인 텃밭의 여왕이 "오후에 비 온다니, 그 전에 상추 뜯어가라"는 연락이었다. 없는 눈곱을 손으로 비비며 그의 텃밭으로 나갔다. 텃밭이 싱그럽고 최상으로 깔끔했다. 주말농장 블록 전체가 하나 같았다. 개인별로 재배 품종이 다소 달랐지만, 상추가 없는 밭이 없었다. 지인의 텃밭에서 상추가 심긴 한 골을 정해 그중에 잘 자란 한 줄을 뜯었다. 뜯는 것은 정성이고, 기술도 쪼끔 필요하다. 얼마나 깔끔하게 잘 뜯었는지 옆 텃밭 사람들이 보고 칭찬이 자자했다. 하하,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은 이 나이에도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상추가 너무 많아 인근에 사는 S 선생님께 연락, 한 보따리를 챙겨 드렸는데도 집에 와서 펼쳐 놓으니 여덟 봉지다. 그것도 꽉꽉 눌러 담은 거다. 나눠 줄 것을 감안해도 두 개가 남는다. 밖에 들고 나가 아파트에서 일하는 분에게 가져다드리니 "매일 사다 먹는데...."라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즐거운 아침이다.

'텃밭의 여왕' 밭에서 뜯어온 상추


상추는 유럽과 북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상치 또는 천금채로 부르기도 한다. 순우리말로는 '부루'다. 배추와 닮았지만, 국화과 식물로 민들레와 가깝다. 채소 중에서 별다른 맛이 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쌈 채소다. 지금은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그 옛날에는 구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페르시아 왕의 식탁에 필수로 올랐다니 귀한 채소였을 것이다. 동양에는 수나라와 당나라 무렵에 중국으로 들어와 우리나라에 전래했다. 천금채라고 불리는 말도 '천금만큼 값나가는 채소'라는 의미다. 비싼 이유 중 하나가 상추 줄기에서 나오는 우윳빛 액즙이 아편 같은 효과와 정력에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 아낙들은 고추밭 사이에 상추를 심어 남몰래 서방님 밥상에 올렸다고 한다. 고추밭 사이에 자란 상추니, 정력에는 으뜸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런 낭만이 사라져서일까? 요즘 텃밭의 상추는 액즙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신선하고 맛이 아주 좋다. (2025.5.16.)

나에게 상추는 밥도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