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

에밀 타케 신부와 성 유스티노 신학교

그러려니하며살자 2025. 4. 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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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명륜로12길 47(남산동). 성유스티노 신학교 1914년 건립. 1990년 대구시 문화유산자료 지정.


에밀 타케 신부는 1898년 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1952년 선종한 뒤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잠들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를 본 후 1922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30년간 재직한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갔다.

왕벚나무 안내판.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


학교는 지척에 있었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 신학대학 유스티노 캠퍼스였다. 건물 외형은 처음의
'ㅡㄷ' 자형에서 양쪽 날개가 철거되어 'ㅡㅣ' 자형이 됐다. 내부 1층은 성당과 유스티노홀과 옴니아홀, 2층은 드망즈홀과 앗숨홀이었다. 4개 홀은 창고처럼 보였다. 행사용 각종 자재와 종(鍾), 모관, 의류, 그림 등이 전시 보관돼 있었다.


2층 드망즈홀에서 바라본 성당.
성당 제대


1층 성당은 넓지 않았으나, 대부분 성당의 좌석은 가로로 놓여 있는 데 비해 성유스티노 성당은 중앙 통로를 넓게 틔우고 장의자를 세로로 배치한 점이 특이했다. 마룻바닥이 반질반질하게 윤이나 정숙함이 느껴졌다.

정미연 화가의 작품.


2층 드망즈홀에서 에밀 타케 신부와 직간접으로 관련돼 보이는 그림 2점을 보았다. 하나는 가톨릭 성화 작가로 알려진 정미연 화가의 작품 '왕벚나무와 에밀 타케 신부'였다.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 한라산에서 발견한 왕벚나무를 표현한 작품으로 내벽에 걸려 있었다. 왕벚나무 자생지가 우리나라인 것을 알고 난 후 감상하니 그림이 남달라 보이면서 뜻깊었다.

2층 드망즈홀 입구의 그림.
해설 액자.


다른 하나는 파리외방전교회 로비에 걸려있다는 '조선으로 떠나는 선교사들'이라는 그림의 영인본이었다. 화가 샤를르 드 꾸베르뗑이 그린 작품이었다. 그림 옆에 해설 액자가 있어 참고됐다. 그 시대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림에 나오는 네 명의 신부도 조선에 들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모두 처형됐다. 그림의 엄숙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불확실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만 같다. 하단부 왼쪽의 미소 짓는 예쁜 어린이는 화가의 아들로 근대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꾸베르뗑이다. (2025.3.31.)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
에밀 타케 신부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