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

왕벚나무와 에밀 타케 신부

그러려니하며살자 2025. 3. 3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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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청 왕벚나무


벚꽃의 계절이다. 꽃이 언제 피려나 기대했더니 -대구에는- 지난주부터 피었다. 오래되지 않은 예전에는 벚꽃이 좋다고 하면, 친일이라고 몰아세운 적이 있었다. 요즘은 전국의 가로수가 벚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고, 축제까지 있으니, 격세감이 든다. 벚꽃(사쿠라)은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다. 일시에 확 피어났다가 동시에 지는 것이 사무라이 정신과 닮았다고 한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면 마치 꽃눈이 내리는 듯한 몽환에 빠져들기도 한다.
며칠 전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있는 한 왕벚나무를 보러 갔다. 느티나무처럼 우람하지는 않고 평범하며 키가 컸다. 얼키설키한 가지에 가녀린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나무 아래 '왕벚나무 자생지는 한라산이며 이를 발견해 세계에 알린 사람은 에밀 타케 신부'라는 안내판이 세위져 있었다.

대구대교구청에 있는 왕벚나무와 안내판.

에밀 타케(Emile J. Taquet, 1873~1952, 한국명 엄택기) 신부. 1902년부터 1915년까지 제주도에서 사목하는 동안 1만여 점 이상의 식물을 채집하여 한국 식물분류학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남겼다. 채집된 표본은 미국 하버드대와 일본 동경대, 영국 왕립식물원 에든버러 표본관, 프랑스 파리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특히, 1908년 4월 14일 제주도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해, 1912년 독일 베를린대학 쾨네 박사에게 감정받아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우리나라임을 세상에 알렸다.
이곳의 왕벚나무는 유전자검사와 나이테 검사를 통해 1930년대 에밀 타케 신부가 성유스티노 신학교 재직 시 심겨진 나무로 판명됐다.


한때는 벚꽃(사쿠라)을 일본 국화(國花)로 오해한 적이 있었고, 자생지가 일본인 줄로 여겼다. 현재 벚꽃의 종류는 2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우리나라 한라산 3곳과 해남 대둔산 1곳이다. 한라산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한 에밀 타케 신부는 부임하는 사목지마다 왕벚나무를 심었다. 현재 대구대교구청 안의 왕벚나무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교수와 교장으로 재임할 당시에 심은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온주밀감 14그루를 키워 제주도에 퍼트려 밀감 산업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사제서품 되어 24세 때 프랑스에서 한국에 들어와 79세 심장마비로 선종할 때까지 55년 동안, 이 땅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이 땅의 사람과 자연만 사랑한 사제였다. (2025.3.31.)


에밀 타케 신부 헌정곡 <벚의 벗>. 작곡 한장호(베네딕도) 신부, 작사 김성(요한 세례자) 신부, 노래 소프라노 강정아(소화데레사) 교수.



■ 왕벚나무 자생지에 관해 국가유산청 해설(요약)
ㅡ해설 공통 사항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꽃은 4월경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을 띤다. 지형이 높은 곳에 자라는 산벚나무와 그보다 낮은 곳에 자라는 올벚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란 설도 있으나, 제주도와 해남 대둔산에서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왕벚나무는 한때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베어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것이 밝혀지면서 우리나라 곳곳에서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다만, 현재 심어진 대부분의 가로수는 일본에서 재배하는 왕벚나무로 밝혀져 제주왕벚나무로 변경하는 작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ㅡ자생지별 해설
* 제주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번지

제주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가는 길목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서 그 수가 매우 적은 희귀종이므로 생물학적 가치가 높고, 식물지리학적 연구가치가 크므로 신례리 제주왕벚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 소재지: 제주시 명림로 584 (봉개동)

봉개동 제주왕벚나무 자생지는 제주시에서 동부산업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로 60m쯤 떨어져 두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서쪽 주왕벚나무에서 남서쪽으로 60m 거리의 계곡부에 한그루가 더 자라고 있어 모두 세 그루의 제주왕벚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높이는 15m 정도이다. 현재 동·서로 위치하고 있는 두 그루의 제주 왕벚나무는 돌을 쌓아 작은 석축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제주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서 그 수가 매우 적은 희귀종이므로 생물학적 가치가 높고, 식물지리학적 연구가치가 크므로 제주 봉개동 제주왕벚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제주 관음사의 왕벚나무 자생지(시도자연유산)
* 소재지: 제주시 아라동 산66번지 관음사

사진 출처: 제주도어 비욘드

관음사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왕벚나무 자생지로서는 가장 많은 개체수를 이루고 있으며 꽃의 형질도 매우 우수하여 보존할만한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 소재지: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24-1번지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는 대흥사 뒷편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나이는 알 수 없으며 나무의 높이는 15m, 둘레는 0.8m이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서 그 수가 매우 적은 희귀종이므로 생물학적 가치가 높고, 식물지리학적 연구가치가 크므로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파리외방전교회(MEP, 巴里外邦傳敎會): 아시아 선교를 내걸고 만들어진 교황 직속 전교회다. 죽을 때까지 선교지를 떠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선교사가 될 수 있었다. 1658년에 세워진 후 아시아에 4500명, 한국에 360여명의 선교사를 파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