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1. 08:11ㆍ입맛
반월당에서 친척 형과 동생하고 만났다. 어디로 갈지 물었더니 밥보다 술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객지 생활로 시내 지리에 어두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실빗집 <삼삼구이>로 안내했다. 이모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표정이 무척 밝으니, 추석을 잘 쇤 모양이다. 수인사를 전하고 무침회를 주문했다. 형, 동생하고 술자리는 실로 오랜만이지만, 특별히 묻고 전할 안부가 없다. 서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마주 앉으니,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모르겠다. 어릴 때의 나이 차이는 오뉴월 하룻볕 쬐듯 뚜렷했는데 머리카락이 허옇게 세고 보니 형이 동생이고 동생이 형이다. 긴 세월에 물들면 다 함께 단풍 되는 것이다.
무침회가 나왔다. 가오리회였다. 미주구리(물가자미)를 시켰는데 준비가 안 됐다기에 바꾸었는데 의외로 맛있다. 회가 통통하고 야들야들해 부드러운 식감이 좋고 양념이 상큼했다. 참소주 한 잔에 한두 점씩 집으니, 입안이 풍성하다. 추석 연휴 기름진 음식이 입맛을 점유했는데 무침회가 개운하게 역전시켜 주었다.
이야기가 재미를 더하는데 서울 살았던 동생이 "서울에는 참소주가 없더라"면서, "'참이슬'이 나오고 '참소주'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라고 했다. 소주 최고의 브랜드인 진로가 워낙 유명해 그런가 싶었는데, 금복주 홈페이지를 확인하니 참소주가 1997년 출시됐다. 1998년생 참이슬보다 한 해 먼저 나왔다. 참이슬 작명은 손혜원(브랜드 디자이너 겸 정치인)이 지었다. 2012년 네팔 여행할 때 만난 박호영(일러스트레이터) 씨가 참이슬 상표 글씨를 자기가 썼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명함에 사용하라고 즉석에서 써준 글씨를 아직 기념으로 갖고 있다. 병 수가 늘어나면서 믿거나 말거나 퍼진 소문도 말했다. 참소주 회사인 '금복주' 네이밍도 창업주의 부인 이름(金福珠)을 본떴다는 거였다. 호기심을 충족하는 그럴싸한 스토리였다.
대미는 술값 계산이었다. 친척 형이 자기가 술값을 꼭 내야, 다음에 동생들이 자리를 만들어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맞는 말 같다. 형이 카드를 끊었는데 소주 몇 병값만 나왔다. 알고 보니 추가 안주를 주문할 때 동생이 슬쩍 먼저 계산했었던 모양이다. 형은 그것을 모른 채 주머니에 카드를 찔러넣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헤어지기에 섭섭해 형과 동생이 함께 타는 지하철 승강장까지 따라가 손을 흔들어 주고 돌아왔다. 의좋은 형과 아우가 서로 볏단을 옮겨주는 전래동화가 떠올랐다. 다음에는 정이 목마른 형, 동생에게 내가 먼저 꼭 연락해야겠다. (202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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